본문 바로가기

Miscellaneous

징기스 칸이 발해왕 대조영의 아우의 19대손이라고요?!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가 정복한 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땅을 정복했다는 징기스 칸. 그 위대한 정복자의 직계 시조가 발해 고왕 대조영(大祚榮)의 아우인 대야발(大野勃)이라는, 즉 징기스 칸이 그의 19대손이라는 견해가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주장의 근거는,

 

1. 징기스 칸의 어릴 적 이름 "테무진" 

징기스 칸이 "칸(=왕=황제)"이 되기 전 이름은 "테무진"이었는데 이 이름은 고구려 3대 대무신왕(大武神王)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2. "징기스 칸"이라는 칭호

징기스 칸이라는 왕호는 발해 고왕 대조영과 그 아버지 걸걸중상 등의 호칭이었던 "진국왕(震國王)"또는 "진국공(公)"의 옛 소리인 "텡기즈 콘(Тenggiz khon=팅기즈 칸=팅궤트 칸)"에서 나온 것이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자신의 <동방견문록>에서 징기스 칸의 이름을 “칭기 칸”이라고 썼다. “친기 칸”은 원대 남인(南人)의 말로 “진국왕”이라는 소리이다.

3. "몽골"이라는 종족칭 및 국명

"몽골"이라는 말은 발해-말갈이라는 "말갈(靺鞨)", 곧 고구려-말갈어로 “말/몰키우는 마을, 고을”을 뜻하는 "말골(馬忽)/몰 고을"이라는 뜻이다.

 

오오… 상당히 설득력 있습니다.
머지? 갑자기 밀려오는 이 뿌듯함은...?

 

인스타용으로 만든 이미지
귀여운 말
많은 말을 했군요.

 

징기스 칸은 인재채용에 있어서도 계급, 출신을 따지지 않고 철저히 능력위주 인사를 하였습니다. 술에 빠져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들을 배제하고 자신의 딸들에게 제국의 경영을 맡겼습니다. 가문 안팎의 남자들로부터 수차례 배신을 당해 믿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징기스 칸의 딸들은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제국 도시의 원형을 세우고, 왕국 간 서로 연계해 몽골의 유통체계를 확립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서 술에 빠진 남자 형제들의 아내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권력에서 밀려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딸들의 혼사는 동맹 전략의 수단이었다죠. 우리나라도 징기스 칸의 사위국이었는데 충렬왕부터 충정왕까지 '충'자가 붙은 여섯 왕들이 칭기스칸 직계인 보르지긴 가문의 사위였다고 국사시간에 배우셨죠?

그는 자신을 죽이려했던 적이라 하더라도 인재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등용했고,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적에게 강간당한 아내를 불문에 부치고 데리고 살았고 강간으로 태어난 맏아들을 친아들로 공식 인정하였다고 하네요. 당시로서는 말도 안되는 처사.

 


Those who were adept and brave fellows I have made military commanders. Those who were quick and nimble I have made herders of horses. Those who were not adept I have given a small whip and sent to be shepherds.

나는 숙련되고 용맹한 자들은 군대 지휘관으로 등용했다. 재빠르고 날렵한 자들은 말을 몰도록 했다. 미숙한 자들에게는 작은 채찍을 쥐어주고 양치기로 보냈다. 
ㅡ 징기스 칸

 

 

이렇게 관대한 징기스 칸도 전쟁에서는 무자비했습니다. 항복하면 받아들였지만 저항하면 남녀노소 불문 초토화시켰습니다. 유럽 전역을 휩쓸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한 흑사병이 바로 징기스 칸의 몽골군에 의해 시작됐답니다. 제노바의 무역기지 '카파'를 포위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포 포탄 대신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성 안으로 날려보낸 것입니다. 그 안에 기생하고 있던 쥐벼룩이 페스트균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유대인들은 흑사병으로 인한 피해가 적은 편이었는데, 이유는 모세율법에 따라 항상 손을 깨끗이 씻었고, 조금이라도 병세가 보이면 환자를 격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기 때문에 그들만 피해가 없었다고 오해하고 무고한 유대인들을 교수형시켰다죠.

불쌍한 유대인들. 어딜 가나 동네북. ㅠㅠ

 

 

징기스 칸은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중요한 행사가 있기 전에는 여러 날 동안 자신의 천막에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서방정벌을 나서기 전에도 산에 올라가 사흘 밤낮을 단식하며 '저를 도우시어 저에게 복수할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죠. 기독교, 불교, 무슬림 등 다양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였고, 노년기에는 도교에도 심취하여 불멸과 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자아는 적이다'라는 그의 철학은 마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라는 기독교의 복음에서 따 온 것 같네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풀뿌리와 들쥐를 잡아먹으며 가난하게 살았던 징기스 칸도 고난을 극복하고 밀레니엄 유명인사(악명으로)가 되었는데, 그 보다 많이 가진 우리들은 흙수저라고, 형편이 어렵다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Don't OTL!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ㅡ PHILIPPIANS 4:6 

 

 

아래는 칭기즈 칸의 명언들

...이라고 알려진 인용문. 사실은 재구성된 문구인 듯…

 

외롭다 말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으며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었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황량한 초원에서 불타는 태양과 눈보라 속에 풀뿌리와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힘들다 말하지 말라.
나는 집에 머물지 못했으며 전 세계를 달렸다.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나의 제국은 병사 10만 명에, 백성이라곤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2백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힘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까지 했다.

적(enemies)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내가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 칸이 되었다. 
ㅡ Genghis K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