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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의 허점과 근본적인 문제

전세와 선의의 임대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얼마 전 전세 제도가 수명을 다했다면서 근본적인 검토를 예고했다. 선의의 임대인에 대해 대출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고도 했다.

 

발언에서 선의라는 용어는 법률 용어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법학에서 선의란 어떤 사실을 모르는 것을 의미하고 악의란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며 여기에는 윤리도덕적인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법률 용어로 사용한 경우라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임대인이라는 의미가 될 텐데, 세상의 모든 물건 값은 변동성이 있으므로 절대로 떨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 정도로 무지하다면 임대차 시장에서 거래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사기 의도는 없었으나 역전세 등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힘든 이른바 선의의 집주인'이라고 언급한 것을 볼 때, ‘착한또는 좋은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기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착한 집주인인가? 아니라고 본다.

 

역전세와 깡통전세

 

역전세란 전세 계약 체결 후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해야 할 시기에 전세 값이 떨어져서 새로운 임차인을 받더라도 구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에 부족분이 생기게 된 경우를 말한다.

 

깡통전세란 전세 값보다 집값이 더 많이 떨어져서 집을 팔더라도 임차인에게 보증금 일부 또는 전액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깡통처럼 텅 텅 소리가 난다, 텅 비었다는 뜻이다.

 

임대차3법 피하려다 역전세에 빠진 임대인들

 

역전세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게 된 임대인들은 사실, 4년 치 전세 상승분을 한꺼번에 반영하여 전세보증금을 받은 자들이다. 4년의 임차기간을 보장하고 5% 상한제가 적용되는 임대차 3법의 취지에 도전하며 높은 금액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한 자들이 착한 임대인들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법을 회피하려고 과도한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 싶다.

 

보증금은 기한이 되면 돌려줘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기한까지 준비해둬야 하는 것이고 다른 세입자에게서 받아서 주겠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억지이며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다.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집주인이라면 본인의 채무상환능력을 검토하여 기한이 도래했을 때 동시이행으로 반환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 금액으로 보증금을 책정했어야 한다.

 

이런 임대인들에게 DSR, DTI 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해 주겠다는 발상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가 100%를 훨씬 넘는 우리나라 현 상황에서 매우 위험하다. 보통 전세를 놓는 임대인들은 자기자본 없이 전세금으로 집을 사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갭투기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세보증금 반환을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해 주는 것은 결국 갭투기꾼들만 도와주는 셈이며 더욱 성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갭투자? 실체는 갭투기

 

갭투자라는 꽤나 근사한 용어로, 심지어 부동산중개업자들도 자기자본 1000만원, 전세끼고 갭투자라는 식으로 버젓이 홍보하며 일반인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체는 투기(投機)’. 비슷한 용어로 도박, 모험이 있다. 갭투기꾼들은 에 투자하지 않는다.

 

기존 주택 시장에서 투자란 낡고 오래된 집을 싼 값에 사들여 리모델링한 후 세를 놓거나 높은 값에 되파는 것이다. 쓸모없던 집이 쓸모 있는 집으로 바뀌었으므로 임차인과 임대인도, 매도인과 매수인도 서로서로 만족할 수 있다. 노후 주택의 효용가치가 늘었으므로 사회적으로도 유익하다.

 

갭투기꾼들이 주로 전세를 이용하는 이유는 거액의 전세금으로 주택구입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도 있겠지만, 전세의 경우는 대규모 파손이 아닌 이상 소소한 손상과 고장은 임차인들이 고쳐서 써야 한다는 점 때문도 있다.

 

필자도 전세로 전전하던 동안 도배해 주는 임대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에어컨이라도 고장이 나서 수리해주게 되면, 하자 있는 물건을 중개했다고 중개인들을 물고 늘어진다. 갭투기는 ‘집’에 ‘투자’는 안 하면서 시세 차익만 노리는 사회악이다.

 

투기꾼들만 도와주는 대출 규제 완화

 

모든 투자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처럼 거품이 꺼지는 시점에서는 예상보다 더 크게 전세가가 떨어질 수도 있다. 아직 깡통전세가 아니므로 팔면 된다. 하지만 갭투기꾼들은 절대 싸게 집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 ‘손해에 대한 피해를 임차인들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정부가 정말로 임차인들을 걱정한다면 갭투기꾼들의 DSR이나 DTI를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집을 팔도록 만들어야 한다. 깡통전세가 되기 전에.

 

대출 규제를 일부 풀어준다손 치자. 갭투기꾼들은 지금 보증금을 반환할 돈이 없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반환하겠다는 상황이다. DSR 40%가 이미 꽉 찬 상태인데 이게 50-60%로 늘어나면 은행이 위험해진다. 대출 금리도 다시 꿈틀대고 있다. 물가는 여전히 높고 경기는 나빠지는데 임대인들의 소득이 갑자기 늘어날까? 언제까지 임대인들이 투잡으로 버틸 수 있을까?

 

대출을 해 준 은행이 선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한 부동산에 전세로 들어 올 간 큰 임차인이 어디 있나? 결국 파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집값이 안 오르면 손해보고 팔아야 한다. 아니면 파산하고 은행에 피해를 떠넘겨야 한다. 금융이 위험해지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과거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망가진 전세 시장

 

전세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는 사적 자금 융통 수단이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집을 짓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일찍 상환하거나, 은행 대출 문턱이 너무 높을 때 임차인으로부터 이자 없이 목돈을 융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매달 사라지는 월세와 달리 임차기간이 끝나면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내 집 마련의 발판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전세 시장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국가가 잘못 개입하여 전세담보대출을 엄청나게 풀어줬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풀면 풀수록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것은 코로나 사태 때 풀린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미친 물가를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평생 동안 노예처럼 일해도 내 집 하나도 장만하지 못하게 된 것은 전세담보대출이 집값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미친 저세상 집값 상황에서 임대차3법이 나오자 일부 나만 잘 살면 돼임대인들이 4년 동안 올려 받을 것까지 포함해서 높은 전세금을 받았고, 상승한 전세금으로 자금이 마련된 갭투기꾼들이 집값을 올리면서 매수한 덕분에 집값도 역사상 최고점을 쳤으나 더 이상 이 미친 집값을 받아 줄 매수인들이 실종하면서 지금처럼 부동산 하락 사이클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부동산 하락기에 역전세, 깡통전세가 늘어난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 믿는다.

 

집값을 쏘아 올린 연료들

 

선진국형 임대차 시장이 되려면

 

한국의 임대차 시장은 매우 후진국이다. 집값이 비싸다고 선진국이 아니다.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이 선진국처럼 발전하려면 더 이상 거주주택을 대상으로 이런 갭투기들이 성행해서는 안 된다앞으로 전세담보대출 한도를 조금씩 낮춰야 한다. 또한 전세금도 일종의 빚, 즉 사금융이므로 DSR의 적용을 (기간을 길게 해서)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집주인들이 무분별하게 전세 호가를 높이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새 임차인에게서 보증금을 받아서 구 임차임에게 보증금을 반환하는 인습을 고쳐야 한다. 외국처럼 무조건 기한이 되면 보증금을 반환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새로 임대를 놓을 때는 집을 수리한 뒤 비어있는 상태에서 집을 보여 주고 임차인을 들이도록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데 낯선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온다는 것이 얼마나 후진국스러운 일인가. 사는 사람도 고통스럽고, 새로 입주하려는 사람도 가득 들어찬 세간 때문에 집을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못한다.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개선해야 할 것이다.

 

1도 양보 안 하는 임대인들

 

임대차 계약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임대인들은 보증금 수령과 동시이행으로 집을 인도해 준다. 혹여나 1시간이라도 늦으면 돈을 받을 때까지는, 이삿짐 하나라도 집안에 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필자는, 오후에 폭우가 예보되어 있어 1시간만 일찍 이삿짐을 옮기면 안 되겠냐고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돈을 갖고 올 때까지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오전 9시에 예약한 것을, 겨우겨우 30분 당겨서 정산하고 보증금을 받아서 주고 난 뒤 급하게 이사를 마쳤는데, 짐을 다 들여놓자마자 폭우가 퍼붓기 시작했었다.

 

임대인들은 본인들이 임차인들에게 돈을 받을 때는 1시간도 양보 안 하면서, 돈을 내줘야 할 때는 느긋하다. 새 임차인에게서 돈을 받아야 보증금을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없다. 그렇게라도 돈을 받아야 하는 임차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감내해 주기 때문에 이러한 악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증금 마련은 채무자의 책임

 

민법 제473조는 변제비용은 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채무자의 부담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변제란 채무 내용에 좇아 현실로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채무란 임대차기간 만료 시에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 채무를 말한다. 보증금 반환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채무자의 책임이다.

 

대출받아서 변제하든, 새 임차인을 구해서 반환하든, 다른 부동산을 임대해서 상환하든, 사업해서 번 돈으로 변제하든, 채무자인 임대인의 독자적인 책임과 비용으로 해결해야 한다. 임차인이 임대받기 위해 보증금을 어떻게 마련하든 임대인이 관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임차인은 기한이 될 때까지, 즉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임대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보여 줄 의무가 없다.

 

침해받고 있는 임차인들의 기본권

 

현재의 악습은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기본적 인권으로서 미개한 전세 제도와 악습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타인에게 자신의 거주지를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 임차인의 전세권, 임차권과 같은 용익권도 보호받아야 할 정당한 재산권인데, 기간 만료 전 최소 2~3개월 (집이 나가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이상) 동안에는 온전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헌법 제16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공적인 이유로 범죄인의 주거에 들어가는 경우를 이렇게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면, 개인이 사적인 이유로 주거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반드시 임차인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하며, 이는 포괄적 동의여서는 안 되고, 보증금을 받기 위해 열악한 위치에서 부동산 시장에 만연한 악습에 의해 부당하게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여성에 대한 묻지마 범죄도 증가하는 현대 사회에서, 임대인이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는 이유로 낯선 사람들에게 주거지를 보여주도록 강요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제17조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며 형법 제36장의 보호법익인 ‘주거의 평온’을 사전에 불안한 상태로 무방비 노출시키는 것이며,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을 강도나 각종 성범죄의 제물로 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 문화는 임차인들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며 각종 범죄에 노출시킨다.

 

돌려막기를 가능케 하는 악습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구임차인의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에, 빚으로 빚을 돌려 막을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상도덕적으로도 해이해지고 자신의 상환능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받을 수 있는 한 최대로 받으려고 호가를 높이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집을 내놓기 전에 구 임차인을 먼저 퇴거시켜야 한다면, 보증금 반환을 위해 본인의 현재 DSR 상태와 소득을 고려해보지 않겠는가. 어쩌면 임차인이 2년 이상 오래도록 계속 살아주길 바라는 임대인들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 임차인을 붙들어 두기 위해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피며 고장 난 보일러도 바로바로 수리해 주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마무리

 

2년이든 4년이든, 임대차 기간 동안에는 임차인이 온전히 주거의 평온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 주고, 기본권과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임차인이 퇴거한 후 집을 수리 및 단장해서 중개소에 내놓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임대인들은 집을 채 수리하기도 전에 임차인을 들이고 수도를 고친다며 삶의 터전을 공사장으로 만들거나, 보증금 반환을 위해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으니 협조 부탁한다며 식사 중이든 해가 진 저녁이든 집 구경하러 오는 낯선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불안한 상황에 노출시켜 고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임대차 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동등한 지위에서 체결하는 유상쌍무 계약이지 호의관계가 아니다. 공짜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월세나 전세보증금이나 사용료를 지불한 셈이니 임차인의 기본권과 주거의 평온은 당연히 온전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임대차 3법으로 4년 기간을 보장하고 인상률을 억누르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근본적인 악습을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자본 갭투기의 동력이 되는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야 할 것이다. 임차인이 거주 중인 집을 중개소에 내놓아 빚으로 빚을 연속적으로 돌려 막을 수 있게 하는 미개한 문화를 고쳐야 한다. 부디 정부가 무엇이 진짜 근본적인 문제인지 잘 파악하여 수정해주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바라건대, 앞으로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더 이상 갭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현명한 한국인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구글이 반말을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한번 반말로 해봤다. 반응 봐서 별로면 존댓말로 복귀하겠다.